고인물에 관하여

고인물에 관하여

얼마 전에 내가 고인물이 되어가는 것 같다는 글을 적었다. 그런데 고인물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나는 위기감을 느끼면서 글까지 적어야만 했을까? 고인물이 되어 간다는 것이 그렇게 나쁜 것일까?

고인물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요즘 이런저런 이유로 내가 고인물이 된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한 적이 많아졌다. 나는 고인물이 된 것일까?

원래 고인물이라는 말 자체는 고여있는 물 그러니까 작게는 웅덩이, 크게는 호수와 같은 물 덩어리를 말하는 것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게임을 오랫동안 플레이해서 그 게임을 통달한 유저들을 고인물이라고 부르면서 신조어가 생겼다고 한다. 게임의 컨텐츠는 무한이 아니기 때문에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게임이 쉬워지고 그때 비로소 고인물이 되는 것이다. 좋게 말하면 장인이라고도 불릴 수 있는 고인물은 왜 고인물이라고 불리게 되는 것일까? 흔히들 고인물 하면 떠오르는 생각을 가지고 조직에서의 고인물은 어떠한가를 생각해보았다.

고인물은 썩기 마련이다?

물론 자연에서는 통하는 말이다. 흐르지 않는 물속의 미생물들이 충분한 산소를 공급받지 못하면 미생물들이 죽고, 그 물은 흐르지 않기 때문에 시체는 그 물에 침식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생물 시체가 말 그대로 부패하고  썩게 된다. 여기서 내가 눈여겨본 것은 고인 물에서 썩는 것은 결국 물이 아니라 물 안의 미생물의 시체라는 것이다.

이 게임 완전 쉬워요~

그렇다면 조직에서는 어떨지 생각해보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썩게 할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는게 내 생각이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냐 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데, 결국 고인물은 그저 물과 같은 존재일 뿐이라 물과 산소와 미생물 등을 한데 모여있는 조직이라는 웅덩이에서 산소를 담고 있는 역할을 할 뿐이다. 미생물들이 산소를 사용해 연명하게 해주고, 또 산소가 모자라면 외부에서 다시 산소를 가져와서 웅덩이에 미생물의 시체가 넘쳐나지 않게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 웅덩이에 오래 있었다는 이유로 산소를 조금만 가지고 있어도 되겠지, 다른 물이 미생물에게 산소를 주겠지라는 생각에 미생물이 죽어 나가는 것을 방관하지만 않는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조직을 썩게 만드는 것은 고인물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특권 의식이다. 특권이라고 하면 조금 부정적일 수 있지만 사실 그들은 그러한 권리를 받아 마땅할 수 있다. 특히 오래 버티기 힘든 조직일 경우, 남들은 버티지 못하고 조직을 떠날 때 그들의 빈자리를 매워가며 묵묵히 조직을 지켜온 것은 고인물들이다. 하지만 그러한 권리 혹은 존중을 본인 스스로 부여하는 것보다 조직으로부터 혹은 조직의 구성원들로부터 하여금 자연스럽게 부여받을 수 있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쩌면 그러한 조직의 분위기나 문화를 만드는 것은 고인물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저번 글에도 썼듯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데, 권리를 가진 고인물들은 조직의 문화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꾸는 것에 어느 정도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안하다 이거 보여주려고 어그로 끌었다. Uncle Ben 당신은 대체...

고인물은 뉴비 유입을 막는다?

게임에서의 고인물은 반복된 컨텐츠 소비로 인해 게임에 대한 이해도 혹은 노하우 같은 것이 어느정도 쌓이기 마련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난이도가 높은 컨텐츠도 쉽게 느껴질 것이고, 그런 것을 어려워하는 뉴비들이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고인물들로 인해 게임의 진입장벽이라는 것이 생기고 그것을 넘지 못한 뉴비들은 유입이 되기 힘들다.

이번에도 조직에서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고인물의 경우 그 조직의 역사를 상대적으로 많이 알고 있고 그에 따라 익숙한 것들이 많을 수 있다. 보통 그 조직에서만 사용하는 용어나 개념이 뉴비들에게는 도메인 지식이라는 진입장벽으로 생기게 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고인물들만이 소유하려고 한다면 문제가 되지만 그것을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구전으로 이루어지는 지식을 문서화한다거나 그러한 프로세스를 잘 갖추려고 노력만 한다면 오히려 그 조직에게는 더 좋은 일이 될 수 있다. 어찌 됐든 그러한 도메인 지식은 그 조직을 이루는 지적 자산이고 그 지적 자산에서 수익을 창출하거나 그 조직을 존재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또한 고인물끼리의 경우 상대적으로 인간관계에 있어서 뉴비들보다는 가까울 수 있으니 뉴비들은 인간관계라는 진입장벽을 만날 수 있다. 흔히 말하는 가족 같은 회사에 들어간다고 생각해보자. 과연 다가가기 쉬울까? 대부분 아닐거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소속감이라는 것에서 꽤나 큰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조직에 속해있는데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렇다면 기존의 조직원들은 서로의 유대감을 공유하거나 인간적으로 가까워지려 노력하면 안 되는 것일까? 절대적으로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조직원들끼리의 유대감이 커뮤니케이션 코스트를 낮추는 것 뿐 아니라 많은 부분에서 좋은 시너지 효과를 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기존의 조직원들의 관계에서 오는 진입장벽은 필수 불가결하다. 그렇다면 뉴비 입장에서 이 진입장벽을 조금이나마 낮게 여겨지도록 해야한다. 사내 워크샵을 간다거나, 수평적 문화를 위해 닉네임을 사용한다거나, 사내 동아리를 운영한다거나 등 방법은 많지만 완벽한 정답은 딱히 뽑을 수가 없다. 조직에서의 과한 인간관계로 인해 피곤한 사람이 생기거나 정치로 인해 그 조직들이 붕괴되는 것을 많이 보기도 했기 때문이다. 고인물들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진입장벽은 존재하기 마련인데 이 진입장벽을 조금이나마 낮게 만들도록 노력해야 바람직한 고인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인물들은 고지식하다?

더 나쁘게 말하면 고인물들은 꼰대다? 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것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모르겠다. 조직에 머문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들에게는 익숙한 것 당연한 것들이 많아지면서 변화를 싫어하게 되고, 보수적인 성향이 짙어질 거라 생각하는데, 그게 모든 사람한테 적용되지 않을 뿐더러 그것이 나쁘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정말 모르겠다. 하지만 변화에 대해서 무조건적으로 반대하고 새로운 흐름에 타지 않으려 한다면 그것은 정말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며 생각해보니 이것이 내가 저번 글을 쓴 이유이기도 하고 내가 이 글을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인 것 같다.
아래는 내가 요즘 즐겨보는 실리콘밸리라는 드라마인데,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이 영상을 예를 들고 싶어졌다. 주인공인 남자는 압축 기술을 연구하고 압축 기술을 가지고 창업까지한 어찌보면 압축 기술 분야의 고인물이다. 이 고인물은 코드에 Space를 쓰는 것보다 Tab을 쓰면 용량을 아낄 수 있기 때문에 Tab을 쓰는 것이 옳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여자는 Tab을 쓰면 어떤 컴퓨터에서는 다르게 보일 수 있고, 어차피 컴파일러를 통하고 나면 똑같기 때문에 Space를 쓰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이 둘을 서로의 사고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며 결국 남자가 화를 내면서 집을 나가는데, 이 때 Tab이 더 위대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한 번의 점프로 8 계단을 내려가려다 넘어지면서 에피소드가 일단락 된다.(8번의 Space Key를 누르는 것과 1번의 Tab Key를 누른 것이 동일하다.) 여기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Tab이 더 좋다, Space가 더 좋다 가 아니라 어차피 컴파일을 하고 나면 똑같아 진다 라는 사실이다.

???: Once it gose through the compiler, It's same thing. Right? / Python: Compiler?!?! 😱

어쩌면 주인공의 말처럼 Tab을 쓰는 것이 정답일 수 있다. 고인물의 입장에는 그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자신의 경험상 그것을 쓰는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사용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중요치 않은 이유가 되었을 수 있고, 그것과 같은 기능을 하며 더 우아한 새로운 방법이 나와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에 시간을 사용하는 것보다 우리의 조직이 이루려고하는 것에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 발전적이지 않을까? 사실 Tab을 쓰던지 Space를 쓰던지 상관없다. 에디터 설정을 바꿔주면 된다. Vim이냐 PyCharm이냐 싸우는 것보다 PyCharm에서 Vim-mode를 사용하면 된다. 그러니까 조직의 본질이 무엇이었는지 계속 자문하며 그것에 합당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고인물이 되어야한다.

조직에서의 고인물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그 사람이 그 조직에 얼마나 오래 속해있는지는 그렇게 크게 중요치 않을 수 있다. (여타 다름 없겠지만) 조직에서 절대적인 고인물은 있을 수 없다. 그 조직이 얼마나 유지되었는가, 조직의 새로운 인원 즉 뉴비의 유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따라 상대적 고인물만이 존재한다. 회사의 경우를 예를 들어 근속 년수에 따라 3년 이상 근속한 직원들을 고인물을 정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회사가 생기고 3년 동안은 아무도 고인물이 아니겠지만 그 후로 한명씩 고인물이 되어 가다가 결국 모두가 고인물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 (중간에 퇴사나 입사로 다를 수 있지만) 그래서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뭐라고 이전 글을 쓴걸까 얼굴이 화끈거린다. 나는 고작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인 고인물인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할까? 아니 어떤 상대적인 고인물이 되어야할까에 대한 답은 사람에게 달렸다. 그 조직의 미생물들이 죽어 나가게 방치하는 고인물이 되기 보다 미생물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고인물이 되는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신이 몸 담고있는  조직이 깨끗한 청정수인지. 빗물이 고여있는 웅덩이인지는 자신이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