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인간미 그리고 다정함
예전에는 뭔가를 정확하게 잘하는 사람에게 "너 기계 같다"고 했다. 계산이 빠르거나, 기억이 정확하거나, 실수 없이 일을 해내면 "컴퓨터 같다"고 했다. 사람이 저렇게까지 잘할 수 있구나, 하는 감탄이 담긴 말이었다.
그런데 요즘 "AI가 한 것 같다"는 말은 조금 다르게 들린다. 어떤 결과물을 보고 하는 말이어도 그렇고, 누군가 말하는 것을 듣다가 "너 AI 같다"고 하는 말이어도 그렇다. 분명 잘 정리했고 유창하게 말했는데, 듣고 나면 선뜻 기뻐하기는 어렵다.
같은 기계를 닮았다는 말인데, 왜 이렇게 다르게 들릴까?
"컴퓨터 같다"는 말에서는 정확하게 해낸 능력을 봤다면, "AI 같다"는 말에서는 그 안에 있는 사람을 찾게 된다. 틀린 말도 없고 설명도 충분한데, 정작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생각은 잘 모르겠는 것이다. 장단점을 빠짐없이 들었는데도 "그래서 너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다시 묻고 싶어지는 순간처럼. 물론 그저 익숙한 AI 말투와 닮았다는 뜻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이 표현에서 느끼는 묘한 아쉬움은 이쪽에 더 가깝다.
인간미 있다는 말
그러다 문득 "인간미 있다"는 말도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말은 종종 누군가의 빈틈을 발견했을 때 나왔다. 늘 빈틈없던 사람이 사소한 실수를 하거나 의외로 서툰 모습을 보이면 "그런 인간미도 있네"라고 했다. 나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는 사실에 조금 안심하면서. 따뜻하고 배려 깊은 사람에게도 쓰는 말이지만, 약간의 부족함 덕분에 사람이 가까워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앞으로는 이 말에 다른 종류의 감탄이 담길 수도 있지 않을까. 남들은 지나친 장면에서 이야기를 발견하는 시선,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을 연결하는 생각, 여러 선택지 가운데 굳이 하나를 고르는 취향. 그런 것을 만났을 때도 나는 "인간미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 사람만의 시선과 생각이 느껴진다는 뜻으로.
그런데 인간미라는 건 대체 뭘까.
생각해보면 나는 같은 풍경을 보고도 저 사람이 나와 다른 것을 발견한 이유가 궁금하다. 무엇을 겪었고 어떤 것을 좋아해서 하필 저 장면에 눈이 갔을까. 인간미가 뭔지 생각하다 보니, 결국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더 알고 싶어진다. 저 사람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내가 듣고 싶은 것은 잘 정리된 답변만은 아니다. 조금 정리가 덜 됐더라도, 너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듣고 싶다. 이걸 진정성이라고 불러도 될까. 말이나 결과물에서 그 사람의 생각과 관심이 느껴지는 것.
물론 말투만 보고 그것을 정확히 알 수는 없을 것이다. AI의 도움을 받았어도 자기 생각이 담길 수 있고, 혼자 썼어도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반복할 수 있으니까.
인간미라는 말이 정말 이런 뜻으로 달라질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그 말을 누군가의 빈틈을 발견했을 때만 쓰고 싶지는 않다. 내가 보지 못한 것을 보는 사람,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에게도 쓰고 싶다. 그런 사람을 보면 궁금하다.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 저 사람의 눈으로 보면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
다시, 다정함
생각이 여기까지 오니 예전에 다정함에 관해 썼던 글이 떠올랐다. 「에반게리온, 아인슈타인 그리고 다정함」에서 나는 이렇게 썼다.
다정함은 단순히 친절하거나 배려심이 많은 것이 아니라,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지속하는 태도에 관한 것이다.
그때는 다정함의 원천이 타인을 향한 호기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정한 사람들은 어떻게 다른 사람의 입장을 저렇게 잘 헤아릴 수 있을까. 그들은 타인이라는 하나의 세계를 궁금해하고, 그 세계를 알아가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내가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의 다정함을 그렇게 설명해보고 싶었다.
이 생각을 가져오면, 앞에서 궁금했던 인간미가 조금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누군가의 고유한 시선은 작품을 만드는 데서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데서도 드러날 수 있겠다. 익숙한 풍경에도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과, 오래 알고 지낸 사람에게도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 둘 다 이미 안다고 생각했던 것 앞에서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만든다.
다만 궁금하다고 전부 물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상대가 이야기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고, 내가 짐작한 마음이 틀릴 수도 있다. 그래서 예전 글에서 썼던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부분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상대를 알아가려면, 내가 잘못 짐작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겠다.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는 생각보다 할 일이 많다.
이번에는 누군가를 궁금해하는 마음이 어디에서 생기는지 조금 보인다. 같은 세상에 살면서도 우리는 서로 다른 것을 보고, 다른 것을 기억하고, 다른 것에 마음을 쓴다. 그 차이를 발견하면 그 사람이 조금 더 궁금해진다. 내가 보지 못한 세상이 저 사람에게는 보일 수도 있으니까.
어쩌면 다정함의 원천을 하나 더 찾은 걸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에게 나와는 다른 시선이 있다는 것을 알아보고, 그 시선으로 세상을 한번 바라보고 싶어지는 마음.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누군가를 너무 빨리 다 안다고 생각하지 않아야겠다. 아직 내가 보지 못한 것이 저 사람에게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