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숙제 하는 삶
"전 요즘 방학 숙제 하는 것처럼 운동하고 있어요."
요즘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실제로 주 4회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이렇게 운동을 하게 된 계기는 어느 주말이었다. 평소처럼 집 밖에 한 번도 나가지 않고 널브러져 하루를 보냈다. 평소라면 '좋은 주말이었다' 하고 마무리했을 하루였다.
그런데 그날 밤에는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사는 게 괜찮을까? 나는 왜 이런 걸 좋아하지?
가만히 생각해보니 쉬는 게 좋은 것과 별개로, 쉬는 것 말고는 다른 걸 할 기운이 없었다. 집에서 뒹구는 것도 좋지만, 그것만 할 수 있는 건 조금 다른 문제였다.
이대로 살다가는 덜컥 방학이 끝나버릴 것 같았다. 아직 해보고 싶은 게 많은데, 그걸 해볼 기운도 없이 방학을 다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AI와 기술의 발전으로 개인의 가능성이 이보다 더 무궁무진했던 시대가 있었을까? 이런 시대에 살면서 피곤하다는 이유로 내 가능성을 더 많이 실험하고 펼쳐보지 못할 미래의 나에게 조금 미안해졌다.
드라마 <미생>에는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체력을 먼저 기르라는 말이 나온다. 그런데 꼭 이루고 싶은 게 없어도 우선 체력을 길러두면 좋을 것 같다.
나중에 해보고 싶은 게 생겼을 때, 기운이 없어서 포기하면 아쉬우니까.
방학을 더 신나게 즐기려면 숙제를 미리미리 해둬야 한다.
인생도 더 신나게 즐기려면 운동을 미리미리 해둬야 할 것 같다.
게다가 이 숙제는 해둘수록 방학이 조금씩 연장되는 느낌이다. 어릴 때도 이런 조건이었다면 숙제를 좀 더 성실하게 했을지 모른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한다고 운동하러 나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진 건 아니다. 여전히 "아유… 하기 싫어…" 하면서 나간다. 방학이 늘어나는 건 좋지만, 역시 숙제는 숙제다.
개인적으로 2026년은 조금 터프한 해였다. 거친 파도들이 지나고 나니 비로소 이런 생각들이 드는 것 같다. 앞으로 뭘 해보고 싶은지, 그러려면 지금 뭘 해두면 좋을지.
이 글을 쓰다 보니 한때 인연을 나눴던 분이 생각났다. "인생을 여름방학처럼"이라는 말을 좌우명으로 삼았던 분이다. 당시에는 크게 와닿지 않았는데,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나를 조금 이해하고 나니, 그 분의 말도 조금 이해하게 됐다. 나의 세계관이 넓어지는 경험이다.
어쩌면 이런 게 사는 맛일지도 모르겠다.